파주의 문화재

혜음원지

지정번호 :
사적 제464호
지정연월일 :
2005년 6월 13일
소재지 :
광탄면 용미리 234-1 외 32 필지
소유자 :
국가
조성시기 :
고려 전기
규모 :
재료 :

문화재 설명

고려시대의 국립 숙박 시설이었던 혜음원이 있던 자리가 광탄면 용미리 혜음령 고개 좌측 능선에 있다. 혜음원은 남경(지금의 서울)과 개성을 오가는 관료 및 백성의 안전을 위해 고려 예종 16년(1120)에 착공해 1122년 2월에 완공한 숙박 시설로, 왕이 행차하여 머물 수 있는 행궁도 갖추고 있었다. 김부식이 지은 <혜음사 신창기新創記>에는 혜음원 건립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1109년 8월 예종은 이소천에게 남부 지방에 대한 암행을 지시했다. 이소천은 암행 후 개경과 남경 사이에 있는 이 지역이 사람의 통행은 많으나 산세가 험해 호랑이나 산적이 출몰하여 일 년에 백여 명이 살해된다고 보고했다. 이에 예종은 이곳에 숙박시설을 설치하도록 명했다.……

이소천이 묘향산의 혜관 스님을 찾아가 일꾼으로 일할 승려 백여 명과 경비를 마련하여 1120년 2월 공사를 시작해 2년 만인 1122년 2월에 완공했고, 그 후 왕이 남경 순행할 때를 대비하여 추가로 왕이 숙박할 수 있는 행궁을 설치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동안 혜음원이 이곳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긴 했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1999년 폭우로 흙이 흘러내리면서 "혜음원惠蔭院"이라 글자가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드러나면서 이곳이 혜음원 자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001년부터 진행된 발굴 조사에서는 혜음원의 대략적 규모, 구조, 성격 등이 밝혀졌으며, 2차 발굴 조사 결과 혜음원은 남서향으로 모두 5개의 단을 이루며 대지를 마련한 후 건립되었으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 터에서 왕의 행궁으로 짐작되는 공간이 확인되었다. 혜음원의 건물은 아래로부터 맨 위까지 중앙 계단을 축으로 대칭형으로 건립되었으며, 건물 안에 별도의 조경 시설과 배수로 시설, 난방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그 외에도 총 4차에 걸친 발굴 조사에서 연못지, 배수로 등의 유구를 발견했으며, 금동여래상, 기와류, 명문기와 등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
혜음원지는 남한에서는 보기 어려운 고려 전기의 건축 양식이며, 왕이 머물 수 있는 행궁이 있는 점, 그리고 건물과 여러 시설의 터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고려시대의 왕실, 귀족, 평민 등 각 계층의 생활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