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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발견] 교가 수집가 양만규 님

문화학교 문예창작반 양만규 선생님의 교가(校歌)’ 수집에 관한 이야기가 3월1일자 인천일보에 소개되었습니다.

 

 

[장인의 발견] 교가 수집가 양만규

  

46년간 땀 흘려 모은 건 교가 아닌 '역사'

 


  

교사 월급 2만원 시절 5개월치 가불

전국 1만개 학교에 교가 보내달라 편지

···대학 2274편 묶음집 펴내

남대문중·해원초 등 5곳 직접 '작사'

 

교가(校歌)는 학교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자 음절 속에 담긴 노랫말로 학교의 역사적인 연대를 읽을 수 있던 좌표였다. 그러나 최근, 친일 부역자들에 의해 쓰여진 '교가'들이 터져 나오면서 잔재 청산과 개선을 위한 전국 시·도 교육계의 파란이 일고 있다. 덕분에 교가가 가진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고 뿐만 아니라 대학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교가 가사를 섭렵한 '교가의 명인'을 파주에서 찾았다. 여덟 번째 발견 양만규 장인을 소개한다.

 

학교 문화유산의 가치를 기록하는 장인

 

초등학교 1145, 중학교 643, 고등학교 499, 대학교 44, 합이 모두 2274. 전국 팔도의 교가 가사를 총망라한 3권의 자료집 <한국의 교가 가사>는 양만규 장인이 46년에 걸쳐 펴낸 교가 가사집이다.

 

1970년에 처음 교가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해 46년의 집필 기간을 거친 이 가사집은 가사의 수록은 물론 가사 내용, 학교명, 주소, 작사자, 작사 시기, 수집방식 등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특히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가사 내용을 당시 국어교사였던 양 장인 본인이 바로 잡아 첨부해 놓기도 했다.

 

"대학교를 다닐 때 학자들이 짜깁기 해 놓은 논문 학위들을 보면서 밑바닥부터 직접 발로 뛰어 학문의 체계를 세워야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었죠. 어느 날은 지인을 뵌 적이 있는데 자네는 고향이 어디인가 물었을 때 파주라 말씀을 드렸더니 파주의 역사부터 전설을 줄줄 꿰고 계신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처럼 바닥서부터 차근차근 이뤄내고 한 학문에 통달한 이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됐죠. 그리하여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학문이 교가였습니다."

 

1967, 그가 처음으로 교편을 잡기 시작한 것도 '교가'와 인연이 깊다.

"신생 학교였던 성남 풍생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모집했었죠. 그때 면접을 보러 가서 인생관을 묻는 질의서에 교가 가사를 적어 냈던 기억이 납니다. 이를 좋게 본 이사장이 다른 면접자들에게는 연락을 따로 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다음날 바로 출근을 하라 하더군요."

 

그의 멈출 수 없던 '교가 사랑'은 급기야 직접 교가 가사를 짓는 것에 이르면서 그가 만든 교가는 지금까지도 후대의 제자들의 입을 통해 불려지고 있다.

 

"70년도에 남대문중학교 재직 시절, 학교에서 국어교사들을 불러 교가 가사를 만들라더군요. 당시 광운 재단 내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같은 교가를 사용했었는데 이것이 분리되면서 별도의 교가가 필요하게 된 것이죠. 결국 제가 써낸 가사가 최종 채택이 됐습니다. 한 번은 시인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이희승 작가가 남대문중학교 교가 가사를 보고 '상을 쉽게 떠오르게 하는 가사'라는 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양 장인이 직접 작사에 참여한 교가는 성남의 풍생중·고등학교, 서울 남대문중학교, 파주 대원초등학교, 서울 해원초등학교 최근 서울 세곡초등학교까지 총 5곡을 작사했다.

내친김에 양 장인은 전국의 모든 학교의 교가 가사를 수집하기로 결심하고 '학교 연감'에 기록돼 있던 1만개의 학교로 서신을 하나 보내게 된다.

 

"교가 가사를 수집하기 위해 전국 학교로 교가를 보내 달라는 편지를 부치게 됐죠. 우체국으로 찾아가 우표를 사려는데 우체국장이 놀란 표정으로 두루마리로 된 우표를 내오더라고요. 그걸 가지고 일일이 우편으로 보냈죠. 교사 월급이 2~3만원이던 시절에 이것을 하겠다고 5개월치를 가불해 수집에 나서게 됐죠. 하지만 답신이 온 학교는 1200곳에 불과했습니다. 도서 산간지역에는 교가가 없는 학교도 있었던 터라 도리어 직접 교가를 지어 보내줄 수 있겠냐는 답변도 있었죠."

 

1만개의 학교 가운데 회신이 없었던 학교들은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가기도 하며 교가 수집에 열을 올렸던 그는 장장 46년 만에 감수를 모두 마치고 초···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교가 가사가 쓰여진 3권의 책을 내놓게 됐다.

 

"돈이 되는 일에는 모두가 달려들지만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저는 교가가 '학교 문화의 핵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책이 이 사회 작은 보탬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반쪽자리 교가 가사집

 

 

양민규 장인의 교가 가사집 '한국의 교가 가사'.

 

올해로 여든의 나이가 된 양 장인은 교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공식 작사가이자 92년도에 그의 작품 '녹두장군의 춤사위'로 문학계 등단한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양 장인이 작사한 클래식 가곡 '손잡은 내 소중한 사람', '백두산아' 50여곡이 저작권협회에 등록돼 있다. 특히 '손잡은 내 소중한 사람'은 한국검인정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명곡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늦깎이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양 장인은 숱한 문학 작품들을 배출해오며 파주문인협회 고문으로 몸담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도 가장 강조하는 세 가지가 첫 번째는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여행을 다니는 것, 세 번째는 쓴 글을 고민하고 수도 없이 고쳐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다져지고 나서는 독창성이 드러난 글을 써야 합니다. 누구도 보지 못한 시각을 글로 써내는 것이 말로 좋은 글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양만규 장인은 매주 월요일이면 파주문화원을 찾아 학생들에게 평론, 해설사 수업과 경기도 문화유산 해설사로 지역 문화를 알리는 것에 힘써오고 있다. 전국 학교의 교가를 수집해 책으로 내놓겠다는 막연한 꿈을 결국은 이뤄낸 양만규 장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지금도 그에겐 못다 한 꿈 한 가지가 있다.

 

"곧 통일이 오겠죠. 남한의 교가를 알아봤으니 이제는 북한의 교가를 수집하고 싶습니다. 북한에 흩어져 있던 학교 문화유산과 교가를 모아 반쪽자리 남한 가사집과 통합된 가사집을 쓰는 것을 소망합니다."

 

/·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출처 :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

 

 

 

      파주문화원 DATE   2019-03-04 09: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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