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문화원 새소식

영집궁시박물관 유영기 궁시장 은관문화훈장 수훈


 

영집궁시박물관 유영기 궁시장 은관문화훈장 수훈

 

 

유영기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보유자가 2020128, 문화활동을 통해 국민문화 활동에 크게 이바지한 것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수여하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영집 궁시박물관의 설립자인 유영기 선생(85)은 70여 년간 가업을 이어 오면서 전통 화살의 복원·전시 활동과 한국 최초 궁시 전문 박물관을 건립, 다양한 교육·체험프로그램 운영 등 전통문화의 보전과 계승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왔다.

 

유영기 선생은 1936년 장단(현 파주 DMZ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장단은 조선조 이래 경기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화살이 만들어지던 곳으로 선생의 집안은 대대로 서울은 물론 신의주에서도 주문을 받는 유명한 화살 제작 가문이었다선친 유복삼 선생은 조부에게서 1914년 전방을 물려받아 운영하였는데 해방 후 분단이 되고 전쟁이 터지자 강화로 피난하였고, 그 후 경기도 파주군 아동면 금촌리에 전방을 새로이 개설하였다전쟁이 났을 때도 선친은 패물과 집문서는 놔두고라도 화살 만드는 장비와 재료는 챙기고 피난을 갔을 정도로 집안 대대로 화살 제작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였다선친은 1961년 예용해 선생에 의해 인간문화재 탐방 기사가 보도될 때만 해도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장(矢匠)이었다. 그러나 1968년 작고하여 1971년에 지정된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유영기 선생은 1948년 장단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부터 부친의 가업인 화살방에서 기술을 연마하여 화살제조에 입문하였다. 1949년부터 선친의 뜻에 따라 그 조역을 감당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전념하게 된 것은 6·25전쟁 이후였다선친을 도와 오랫동안 화살 제작에 종사하였는데 부친이 작고한 후 가업을 이어 화살방을 운영하며 장단화살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선생의 화살 공급처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여 서울일대, 멀리는 삼척, 제주까지 이른다. 활량들 대부분이 선생의 집과 거래를 했다.

그러나 점차 전통 화살을 찾는 이들이 줄어들었다. 1977,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전통 화살 제작 기법을 글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전통도 문서화하지 않으면 변용되거나 사라지게 마련이라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글로 써서 등사판으로 100부의 문서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선생의 첫 책 [한국의 죽전]이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전문 서적이 1990년대에 펴낸 [우리나라의 궁도]이다.

전통 화살에 관한 책을 쓰고 시대별 궁시 기술을 복원하면서도 잊혀짐에 대한 선생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20015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활·화살 전문박물관인 영집궁시박물관을 개관하게 된다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각종 활과 화살 및 쇠뇌, 활쏘기에 필요한 각종 용품, 화살제작 도구와 재료는 물론 중국, 일본, 인도, 영국, 인디언등의 활과 화살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것들은 대체로 선생이 제작한 것이고, 나머지 것들은 기증을 받아 전시하고 있다.

선생은 화살 재료로 쓸 대나무를 찾아 전국 곳곳을 누벼왔다. 필요한 것은 대나무만이 아니다. 접착제가 되어 줄 민어 부레와 힘을 모아줄 쇠심줄, 균형을 잡아줄 꿩 깃까지, 화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선생은 쉼 없이 자연의 힘을 빌린다보기엔 간단해 보여도, 화살 하나를 만드는 데 130번의 손길이 가야 한다. 적당한 대나무를 구해다가 50여 일간 그늘에서 말린 다음, 살을 벗겨 숯불에 구운 뒤 마디를 다듬고 마디에 따라 선별을 하여 화살촉을 만들고 쇠심줄을 감고 오늬를 넣고 깃털을 붙이는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아교를 만들기 위해 민어 부레를 끓여야 하고 중간 중간 중량을 맞추기 위해 숱한 저울질을 거쳐야 한다. 각 화살의 굵기나 마디를 일정하게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다. 몇 년생인지,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자랐는지에 따라 대나무의 성질이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활쏘기 대회가 자주 열리던 시절엔 활량들이 자주 찾아왔다. “화살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반드시 활량을 만납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장기간에 걸쳐 만들어도 사수에게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같은 활, 같은 화살이라도 활 쏘는 사람의 체격과 힘, 그 사람의 쏘는 습관에 따라 명중률이 달라지거든요. 쏘는 사람에게 꼭 맞는 화살, 그게 가장 좋은 화살이죠.”

 

현재 아들 유세현 선생이 대를 이어 전수조교로 궁시장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는다고 했을 때 말렸다고 한다. 대를 잇는다는 점에선 대견스러우나 직접 걸어본 이 길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생활유지도 어려운 데다 갈수록 양궁화살에 밀려 주문도 잘 안 들어오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제는 손자까지 가업을 잇겠다고 한다.

선생이 지금까지 만든 화살 개수는 1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스스로 100% 만족을 하지 못한다. 선생의 특별한 관심사는 조선시대 화살뿐만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동이족의 화살 전체를 복원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전국 박물관과 유적지를 찾아다니고 고서적을 뒤지는 등 잊혀진 궁시 제작기술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

 

* https://www.chf.or.kr 한국문화재단

 

      파주문화원 DATE   2020-12-15 12:06:32
    파일 #1    /    유영기_님.jpg   ( 343.8KB : down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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