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문화재

윤관장군 묘

지정번호 :
사적 제323호
지정연월일 :
1988년 2월 27일
소재지 :
광탄면 분수리 산 4-1
소유자 :
파평윤씨 대종회
조성시기 :
고려 중기 예종 6년(1111)
규모 :
재료 :

문화재 설명

윤관尹瓘(?∼1111)은 문무文武를 겸한 고려 때의 공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동현同玄,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윤관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여진 정벌의 임무를 띤 1104년부터 이후 약 7년간이다. 윤관은 숙종 9년(1104)에 동북면행東北面行 영병마도통營兵馬都統이 되어 국경을 침범하는 여진 정벌에 나섰으나 여진의 강한 기병에 부딪혀 패전을 당하고 임기응변으로 화약을 맺고 일단 철수했다. 이후 윤관은 왕에게 전투력의 증강과 기병의 조련을 진언하며, 여진 토벌을 위한 준비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별무반別武班이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1107년 윤관은 대원수大元帥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함께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고 탈환한 각지에 장수를 보내 국토를 획정하고 9성을 쌓았다. 그러나 이듬해 9성을 다시 여진에게 돌려주고 철수하게 되자 여진 정벌의 패장이라는 모함을 받고 관직과 공신호가 삭탈되었다. 그러나 그의 처벌을 주장하는 재상이나 대간의 주장을 물리친 예종은 1110년 그에게 다시 관직을 제수했으나 사의를 표하고 출사하지 않았으며, 1111년 숨을 거두었다. 윤관은 사후 예종의 사당과 고려 태조와 충의공신을 모신 숭의전에 배향되었다.
윤관의 묘가 자리한 묘역은 상당히 크고 웅장하며 봉분과 석물이 단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봉분은 아래에 장대석 모양의 호석護石을 두르고 봉분 뒤로는 담장을 둘렀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왼쪽에 묘비가 서 있다. 그 아래로 망주석이 서 있고 더 아래에는 장명등을 중심으로 동자석, 문인석, 무인석, 석양, 석마 등이 양쪽으로 있다. 묘역 아래에는 윤관의 영정이 봉안돼 있는 여충사麗忠祠가 있는데 매년 음력 3월 10일 제사를 지낸다.